덕수궁 [사적 제124호]
한양의 모든 궁궐이 임진왜란으로 불타자 머물 곳이 없던 선조가 세조의 맏손자 월산대군 사저와 그 주변 민가를 임시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덕수궁의 시작이다. 광해군이 즉위하고 그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훗날,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고종이 머무르게 되면서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고종은 왕위를 물려주고 13년 동안 함녕전에서 거처하다가 1919년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덕수궁은 근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소장하고 있는 조선의 마지막 황궁이다.
- 위치 : 서울 중구 세종대로 99
- 입장료 : 1,000냥
- 주차장 : 없음 [버스 또는 지하철 이용]
- 관람시간 : 09:00~21:00
- 휴무 : 매주 월요일
- 문의 : 02-751-0742
덕수궁 정문 대한문 [大漢門]
중화전 [中和殿]
고종이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 후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다.
정광헌 [靜觀軒]
조선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셔 두기도 했고 고종의 어진과 순종의 황태자 시절 초상화를 그리던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회화나무
덕수궁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약 350년 고목으로 덕수궁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상서로운 나무라 하여 궁궐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다.
돈덕전 [惇德殿]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 서양식 연회를 위해 신축한 건물이다. 화려한 유럽풍 외관의 벽돌로 지어진 돈덕전은 1층은 폐현실, 2층에는 침실이 자리하였으며, 각국 외교사절의 폐현 및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활용하였다. 또한 순종의 즉위식과 고종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오찬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석조전 [石造殿]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축물로 고종은 고관대신, 외국 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1946년~1947년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다. 2014년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함녕전[咸寧殿]
1897년 건립된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하였고. 고종은 1907년 왕위를 물려주고 13년 동안 함녕전에서 거처하다가 1919년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즉조당 [卽阼堂]과 준명당 [浚眀堂]
즉조당은 1897년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1902년 새로운 정전 중화전이 세워지가 직전까지 정전으로 이용하였다. 또한 광해군과 인조가 즉위한 곳이다. 준명당은 덕혜옹주 교육을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석어당 [昔御堂]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때 환도 후 거처하다. 승하한 곳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시켰던 곳,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돌담밖도 돌담내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라도 걷기 싶은 길이다.
덕수궁 돌담길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나라 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수많은 노래에 등장하기도 했으며 사계절 가로수가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 언제 가도 걷고 싶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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