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경따라 …/명 소 탐 방

순천만 & 낙안읍성 & 조정래문학관 & 송광사

원언더 2023. 1. 26. 16:27
반응형

순천만, 낙안읍성, 조정래문학관, 송광사 

~ 2019. 05. 16 [목] ~

 

~ 순천만(順天灣) ~ 

오후에 찾아간 순천만 바닷가에는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른 새벽에는 몽롱한 안개에 젖어 흐느적대고 낮에는 햇살을 묻혀 흩날리며 머릿결조차 날리지 않을 잔잔한 미풍에도 살며시 춤을 춘다. 갈대밭은 이 땅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순천만처럼 거창하고 우아하며 매혹적인 곳은 없다. 여름에는 초록빛의 대향연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탈색된 줄기들만이 바람에 춤추는 곳 순천만..

 

 

 

순천만 자연 생태관

순천만의 다양한 생태자원을 보호하고 자원의 학술적 연구와 학생 및 일반인의 생태학습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내부 시설로는 전시실, 영상관, 생태교실, 세미나실 등이 있다.

 

무진교에서 바라본 순천만 대대포구 바다로 이어진다.

 

무진교에서 전망대가 있는 용산까지 이어지는 갈대 데크, 길이가 약 1.2km이다

 

세계 5대 습지중 하나인 순천만, 이곳 갈대밭 면적은 약 230만 제곱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순천만 습지는 자연 생태계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곳이다.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용산 전망대 등산로가 이어진다.  해설사 왈...전망대에서 보지않고 순천만 습지를 말하지 마라, 

 

~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순천만 ~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아름다운 S자형 수로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10대 낙조 중 하나이다.

 

순천만 및 주변 농경지에도 전신주가 없다. 전신주를 지하화 한 이후 지금은 1,0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매년 찾아온다고 한다.

 

~ 만조시간이 가까와 김에 따라 점점 S자형 곡선은 사라진다. ~

 

작은 포구였던 순천만은 단순한 포구가 아닌 그 이상이 되어가고 있다. 순천만의 관광객 수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2002년도에 10만여명 밖에 오지 않았던 관광객의 수가 2000년대 중반엔 약 80여명으로 급증했고, 지금은 한해 약 300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 낙안읍성 (樂安邑城) ~ 


야트막한 山들이 감싸 안아 分地를 만드는 자리에 돌담이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수백 년을 거스르는 시간 여행을 한다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樂安邑城민속마을은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을이다.조선 중기 만들어진 石城 내부로 행정구역상세개의 마을 100여 가구의 사람들이 현재 거주하는 곳이다.

~ 토성으로 담장을 둘렀던 마을은 조선 중기 북벌 운동으로 유명한 임경업이 군수로 부임하여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

 

~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 하나 보이지 않는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다. ~

 

~ 마을의 수호신 300년생 노거수<은행나무> ~

 

동,서,남 세 곳으로 자리하는 성문이 있고 동헌, 객사 등 성 안의 옛 행정기관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초가집들은 남방 특유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객사 <낙안지관>는 왕명으로 내려오는 사신들이나 고을을 찾아오는 귀빈들을 영접하고 머물게 하는 곳이다.

 

동헌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물로써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중앙에 있는 퇴청 마루에서 송사를 다루었다고 한다. 동헌 옆 기와집은 고을 수령이 거처하는 관사이다. 

 

중앙 가장 높은 봉이 오봉산이다.

 

 
낙안읍성은 타지역 민속마을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운영되는 시설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생활하는 살아 있는 민속마을이다. 양반들 기와 가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지만 초가집 노란 지붕으로 마을을 이룬 일반 백성들 삶의 터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문학관이다. 조정래(趙廷來)가 지은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고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설립되어 2008년11월 21일 개관하였다. 2개 층의 전시실에는 총 142건, 621점이 전시되어있다

 


 
 
1층에는《태백산맥》 전 10권의 육필 원고 1만 6500장을 비롯하여 작가의 취재수첩, 카메라, 작가가 직접 그린 벌교 읍내와 지리산 일대의 약도 등 작품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육필원고 ~

~ 우측 한옥이 소설에서 현부자 집으로 묘사된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이다. ~

~ 송광사 (松廣寺) ~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曹溪山)에 있는 사찰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대길상사(大吉祥寺)·수선사(修禪社)라고도 하며,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승보사찰(僧寶寺刹조선초기까지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는 등 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함으로써 얻어진 이름) 로서 매우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松廣)’ 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송광산(松廣山)에서 비롯된 것이다.

 

 

 

 
~ 송광사 일주문 ~

일주문을 들어서는 것은 세속의 번뇌와 흐트러진 마음을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 능허교<凌虛橋> ~

능허교 아치형 중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가 나와 있는데 수실막이 즉 맑은 계곡물을 통해서 음섭하는 나쁜 기운을 용의 기운을 빌어서 차단하려는 목적이라 한다.

 

~ 보조국사가 꽃아둔 지팡이로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찾는 날 살아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

 

~ 滌珠閣,洗月閣 ~

스님이 속세를 떠나면 제일 먼저 이곳에서 세속의 때를 씻는 장소라 하며 척주각<滌珠閣>은 남혼을 세월각<洗月閣>은 여혼을 씻는다는 뜻이라 한다.

 

~ 우화각<羽化閣> ~

경내로 들어가기 전 삼청교 위에 지어진 우화각의 풍경은 송광사에서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 大雄寶殿 ~

 

~ 스님들이 수행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여느 사찰과는 달리 송광사는 풍경이 없다. ~

 

~ 觀音殿 ~

관음전은 원래 성수전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15세)을 맞아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 되었다.

 

~ 무소유 법정 스님의 흔적을 찾아 ~

 

 
~ 후박나무 옆 작은 울타리가 스님의 유골이 묻혀있는 곳이며, 의자는 스님이 사용하셨던 일명 "빠삐용" 의자~

 

~ 법정 스님이 17년간 거주하셨던 拂日庵 ~

송광사의 부속암자 중 한 곳으로 16국사중 제7대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창건한 자정암(慈靜庵)  폐사터에 무소유 삶을 실천하신 법정(法頂)스님이 1975년에 중건하여 '佛日庵' 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17년간을 住食하면서 무소유, 선가귀감, 서 있는 사람들, 영혼의 모음, 불타 석가모니, 말과 침묵, 산방한담, 진리의 말씀, 물소리 바람소리, 신역 화엄경, 텅 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숫타니파타, 인도여행의 수필집과 역사등을 집필하셨다.

 

그리고 2010. 3. 11 이서 입적하셨

 

 

~ 무 소유의 길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법정스님 <홀로사는 즐거움> 중에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