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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9박 10일 폴란드 / 크라쿠프, 소금광산, 아우슈비츠 수용소

by 원언더 202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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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5. 09 (수) ~ 05. 10(목)  폴란드

①크라쿠프 ~ ②소금광산 ~ ③아우슈비츠 수용소

 

 

 

 

폴란드 제3의 도시 '크라쿠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558년간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고 폴란드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크라쿠프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도시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크라쿠프와 인접해 있다. 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1호로 등재된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이 자리하고 있어 작은 도시지만 현재까지 폴란드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는 도시이다.

 

 

~ 중앙시장 광장 ~

500여 년간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던 크라쿠프 중앙시장 광장. 유럽에 남아 있는

중세 광장 중 최대급 규모를 자랑한다.

 

~ 크라쿠프 옛날 시청사 부지 ~

청사는 17세기 초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의 시계탑만이 중앙시장 광장에 남아있다.

 

~ 성 마리안 성당 ~

크라쿠프 구시가지의 상징인 성 마리안 성당. 나팔수가 직접 나팔을 부는 것으로 유명하다.

~ 중앙시장 광장의 중앙 직물 시장 ~

 

~ 폴란드 민족 시인 '아다노피치' 동상 ~

 

~ 중앙시장 광장 거리의 악사 ~

 

~ 첫날 숙소 ~

 

 

세계문화유산 '소금광산'

 

폴란드 크라쿠프(Krakow) 시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암염(巖鹽) 광산이다. 13세기부터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하 9층 327m 깊이까지 개발된 거대한 규모다. 197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소금광산 입구 ~

소금광산 지하 240미터에는 요양 시설도 운영한다 각종 피부병이나 위장질환 등을 치료하는 요양원인데 미리 예약을 한 사람에게만 유료 입소다.

 

전면의 4각형 엘리베이터는 올라올 때 이용하고 내려갈 때는 계단으로 지하 64미터를 내려간 다음 경사로 보행으로 138미터까지만 관람할 수 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수직 나무계단 엘리베이터 통로를 이용하여 목재계단을 사각으로 돌려서 설계한 듯하다. 계속 돌아 내려간다.

 

수직기둥의 이음에는 이음쇠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 한옥을 지을 때 처럼 이렇게 이음으로 처리했다. 이 나무들은 모두 소나무들이라고 한다.

 

13세기에 퀸카 공주가 이곳을 지나다가 별견한 이래 17세기까지 유럽의 소금이 귀하던 시절에 이 광산과 농업으로 폴란드가 먹고살았다고 한다.

 

~ 퀸카 공주 동상 ~

 

~ 아직도 현존하는 소금 덩어리 및 소금의 벽 ~

 

소금 광산 내부에는 180개 이상의 갱이 있고 2000여 개의 채굴이 끝난 빈 방들이 있으며, 갱도의 연장 길이가 총 300㎞에 이른다고 한다.

 

700년 동안 약 2600㎦의 암염이 채굴되어 폴란드 왕국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 구실을 했다. 수백 년 채굴 과정에서 형성된 독특한 광산 내부 자체가 관광자원으로 연간 8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소금광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자들이 놀라운 예술작품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빈 공간을 예배당이나 운동장, 성인이나 유명인의 기념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내부에 수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모두가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광산 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 퀸카 성당의 모습 ~

지하 128미터의 광장에 있는 퀸카 성당이다 제1, 제2광장에 모두 성당을 꾸며놓고 일년에 3번씩 미사를 본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여기에 요한바오로 1세의 동상과 퀸카 공주의 동상 등 조각들도 즐비한데 모두 소금들로 조각 한 것이다.

 

~ 소금 운반용 말 ~

당시 이 소금광산의 지하에는 마차를 끌만한 말이 필요하였는데 큰 말을 들여오는 방법이 없자 궁리 끝에 아기 말을 지고 들어온 다음 이 광산 지하에서 키워서 죽을 때까지 소금 수레를 끌도록 했다고 한다.

 

~ 올라올 때 수직 승강기를 이용하는데 약 3분여 소요 ~

 

 

세계문화유산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남부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 학살 수용소. 나치 학살의 생생한 현장으로 40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스실, 철벽, 군영, 고문실 등이 있다. 1945년 1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수용소 건물과 막사의 일부가 남았다. 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국제 위령비를 비르케나우에 세웠으며, 수용소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또한 나치의 잔학 행위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였다.

 

 

 

~ 수용소 입구 ~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생지옥을 만나게 된다.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끔찍했던 광기의 역사를 전해 준다.

 

 

빌리 브란트 독일 수상이 전후 이곳을 처음 방문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통곡으로 사죄한 이후 폴란드인들과 유대인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다고 한다. 독일은 이후로 진심 어린 사죄로 전 국민들로 하여금 이 참상을 견학하도록 하고 특히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해오고 있다고 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아침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해 주며, 노동을 독려했다는 당시의 사진, 물론 독일인이 아니고 수용소

유대인들 중의 사람들이겠지만 이때까지도 유대인들은 새로운 곳에서 정착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가스실 내부 ~

가스실에 들어갈 때 까지도 당시 유행했던 패스트 전염병 예방을 위해 목욕과 소독실에 들어간다고 했다고 한다. 들어가기 전 손톱, 발톱, 머리까지 깎아서 그 머리카락을 침대나 군사용 의복의 속을 넣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 사망자를 화장 한 곳 ~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당 20킬로그램의 소지품만 허가하고 신세계로 이주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서 통보한 다음, 귀금속이나 골동품 등 값나가는 것만 챙겨오도록 하여 전 재산을 빼앗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까지 와서도 설마 죽음으로 가는 줄은 몰랐다고 한다.

 

 

~ 화장하는 내부 가스시설 ~

 

~ 당시 교수형 현장 ~

 

-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 -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이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김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 살해 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 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 가스실 입구 , 이곳에서만 150만명이 학살 되었다고 한다.

 

~ 소름끼치는 감시초소가 우뚝 솟아 있다 ~

 

 

~ 당시의 슬로건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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